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라질 제1공화국 (문단 편집) === 주변국의 반응 === 브라질에 공화국이 수립되자, 석연찮은 반응을 보인 [[영국]]과는 달리 신생독립국인 [[아르헨티나]]는 열광적인 환영을 표했다. 특히 [[미국]]은 브라질의 독립과 동시에 아메리카 대륙의 독립국 대표가 한 자리에 모이는 제1회 미주국제회의를 개최했는데, 브라질 정부는 대표단 단장으로 사우바도르 지 멘도사를 선임했다.[* 제정시대부터 활동한 골수 [[공화주의]]자로 대표적인 [[친미]]주의자였다.] 히우 브랑쿠 남작이 초대 외무장관에 취임하면서 그는 [[미국]]과의 관계를 좁히는데 많은 노력을 가했다. 브라질 외교의 중심축은 더 이상 [[런던]]이 아니었고, 완전히 [[워싱턴]]으로 옮겨간 것으로 보였다. 다만 그는 무조건적인 친미주의가 아닌 북중미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처럼 [[남미]]의 최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쥐고 접근한 것이었다.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친선관계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는데, 두 국가는 공공연히 군비를 늘리며 공개적인 군사력 경쟁에 돌입했다. 이 때 브라질은 주변국인 [[우루과이]]나 [[파라과이]] 같은 중소 국가들과의 밀월을 통해 아르헨티나를 압박하려는 노력을 가했지만, 그리 성공적인 결과는 내지 못하였다. 브라질 접경국에 대한 국경재조정이 이루어졌는데 [[볼리비아]]와는 사소한 무력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. 당시 [[고무]]생산량이 늘어난 [[아크리]]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볼리비아가 주장하면서 일어났다.[* [[아마존]] 북부에 위치한 아크리 지역은 원래 볼리비아의 영토였으나, 실질적으로 해당지역을 개발하여 고무산업 붐을 가져온 사람들은 브라질계 이민자들 이었다.] 양국은 1903년 페트로폴리스 조약을 통해 [[브라질]]이 [[볼리비아]]에 250만 [[파운드]]의 보상금을 지불하는 대신 아크리 지방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